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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지키던 스님도, 진화돕던 산불감시원도 …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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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북부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인해 80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며, 피해가 극심한 상황이다.

이재민들은 대피소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 생활하고 있으며, 의약품과 기본 생활물이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이번 산불로 국가유산과 멸종위기종 서식지에도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피해 복구는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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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산불에 무너진 경북
의성·안동·청송 5개 지역서
1만5천 이재민 대피소 생활
스티로폼 깔고 바닥서 쪽잠
"갖고 나온 재산은 내 몸뿐
지병 있는데 약도 못 챙겨"
지리산 여전히 불씨와 사투
비 내렸지만 진화엔 역부족
"지리산 지켜라" 필사의 사투 지리산국립공원과 인접한 경남 산청군 시천면 동당리 일대에서 산불재난특수진화대가 27일 새벽 산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지리산 지켜라" 필사의 사투 지리산국립공원과 인접한 경남 산청군 시천면 동당리 일대에서 산불재난특수진화대가 27일 새벽 산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뉴스1
"밭이고 농기계고 뭐고 다 불탔는데이제 뭐 해 먹고 살지 막막합니더."

27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길안중학교 대피소. 이곳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있는 김정동 대곡2리 이장(76)은 생계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한평생 이렇게 큰불은 처음 겪어봤고 모든 일상이 멈춰 섰다는 김 이장은 "우리 마을에 29가구가 사는데 모두 불탔다"며 "갖고 나온 재산이라고는 몸 하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과 농사로 생계를 이어온 김씨의 사과밭은 지금쯤 한창 꽃이 필 시기지만 시커멓게 타버려 올해 농사는 모두 망쳤다.

대피소 생활은 힘겹다. 김 이장을 비롯해 이곳에만 이재민 15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구호용 텐트도 없이 모두 맨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쪽잠을 자고 있다. 고령자가 많아 평소 약을 먹는 이재민도 적지 않지만 의약품이 부족하다. 김씨는 "어르신들이 모두 추워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있다"며 "집이 없어 돌아갈 곳도 없는데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역대 최악의 '괴물 산불'이 된 경북 북부 산불이 이재민 일상을 하루아침에 앗아갔다. 이번 산불로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5개 시군에서 이재민 8000명 이상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다. 언제 집으로 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역대급 산불로 피해 복구는 막막하다. 피해 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집은 물론 밭이며 농기계까지 모두 불타 생업도 중단될 처지다. 집계된 의성 지역 농작물 피해만 215㏊다. 안동은 피해 집계를 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고 농공단지 내 공장 10곳 전소 정도만 파악될 뿐이다. 향후 불이 진화돼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면 피해 규모가 어디까지 커질지 짐작도 안 되는 실정이다.

사진설명


집으로 돌아간 주민들도 일상 복귀까지는 험난하다. 단전·단수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안동에서는 일직면, 남선면, 길안면, 임하면, 남후면, 임동면, 풍천면 일부 지역에 이틀째 수돗물 공급이 중단됐고 현재 170여 가구는 전기도 차단됐다. 영덕에서도 달산면, 지품면 등에서 수돗물 공급이 중단됐고 일부 지역에서는 전기도 끊겼다.

안타까운 사망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영덕에서는 이날 차량에서 60대 산불감시원이 불타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 남성은 진화 현장에 투입된 뒤 귀가하다 실종돼 가족이 경찰에 신고를 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귀가 중 도로에서 불길에 휩싸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영양에 있는 사찰 법성사 안에서는 주지 선정 스님(85)도 소사 상태로 발견됐다. 그는 2002년 법성사 주지가 되기 전부터 이곳에서 수행 공부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산불로 국립공원과 문화재, 멸종위기종도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25일 국가유산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발령하고 유물 등을 이송 조치했다. 국가유산 위기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 수준으로 높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인해 국가유산에서 피해가 확인된 사례는 총 23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국가지정 보물 중에는 의성 고운사 연수전과 가운루가 전소됐고 국가지정 민속문화유산인 사남고택도 전소됐다. 아직까지 화마 피해가 없는 세계문화유산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등에는 주변 수목을 제거해 방화선이 구축됐고 방염포가 설치됐다.

산불 피해가 커지면서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교란도 우려된다. 지리산과 주왕산 일대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1급인 반달가슴곰과 산양 등이 서식하고 있다.

지리산은 험한 산세와 강한 바람 때문에 여전히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내리는 비 예보에 기대를 걸었지만 극소량이어서 진화 효과를 보진 못했다. 산림당국에 따르면 지리산국립공원 내 산불로 이날 오전 9시 기준 30~40㏊가 불탔다.

[안동 우성덕 기자 / 산청 최승균 기자 / 서울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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